[POSTECH·고려대 공동 연구진, 저비용 환경응답형 광학 시스템 구현]
최근 기계공학과·화학공학과·전자전기공학과의 노준석 교수, 기계공학과 통합과정 김예슬 씨 연구팀은 고려대(세종) 전자 및 정보공학과 트레본 베드로(Trevon Badloe) 교수팀과 함께 습도에 따라 스스로 특성을 바꾸는 새로운 광학 기술을 개발했다. 현미경이나 의료용 내시경 등 다양한 분야에서 복잡하고 비싼 기존 장치를 대체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이 연구는 재료, 광학 분야 국제 학술지인 ‘Laser & Photonics Reviews‘ 온라인판에 게재됐다.
빛을 활용한 고급 영상 기술에서는 보통 두 가지 모드가 많이 쓰인다. 하나는 ’엣지 검출(edge detection)‘ 모드로, 사물 윤곽이나 경계선을 또렷하게 보여준다. 다른 하나는 ’밝은 영상(bright-field)‘ 모드로, 전체 구조를 고르게 밝게 보여준다. 두 모드 간 전환이 자유로워진다면 영상 분석이 훨씬 쉬워지겠지만, 지금까지는 ’메타표면(metasurface)‘이나 ’공간 광 변조기(Spatial Light Modulator, SLM)‘ 같은 값비싼 장치나 복잡한 제작 과정이 필요했다.
연구팀은 여기에 ’습도‘라는 간단한 자연 현상을 접목했다. 이번 연구에 사용된 재료는 친수성 고분자인 ’폴리비닐알코올(이하 PVA, Polyvinyl Alcohol)‘ 필름이다. 이 필름은 상대습도에 따라 필름 두께와 굴절률이 변하는 특성이 있는데, 연구팀은 이를 이용해 빛의 흐름을 제어했다.
연구팀이 주목한 현상은 ’빛의 스핀 홀 효과(Spin Hall Effect of Light, SHEL)‘다. 이는 빛이 물질 표면에서 반사되거나 굴절될 때, 편광(빛의 진동 방향)에 따라 아주 미세하게 다른 경로로 나뉘는 현상이다. 연구팀은 습도에 따라 PVA 필름의 두께와 굴절률이 바뀌면, 이 스핀 홀 효과도 달라진다는 점에 착안했다.
습도가 낮을 때는 빛이 ‘소용돌이(위상 도넛)’ 모양으로 퍼져 엣지 검출 모드가 구현된다. 그러다 습도가 높아지면(40%→60%) 필름이 물을 머금어 두께가 약간 늘어나고(20nm 정도), 빛의 굴절률이 1.52에서 1.50로 줄어들면서 소용돌이가 풀리고 ‘가우시안 빔(밝게 퍼지는 빛, Gaussian beam)’ 형태로 바뀌어 밝은 영상 모드가 나타난다. 이 변화는 단 0.1초 이내에 일어나 실시간 전환이 가능하다.
연구팀은 이 시스템을 해상도 타겟(정밀한 패턴을 새긴 시편)과 실제 생물 조직에 적용했다. 그 결과, 습도를 40%로 유지했을 때는 물체의 테두리만 뚜렷하게 보였고, 습도를 60%로 높이자 화면 전체가 균일하게 밝아졌다. 이를 플라나리아와 소장 조직 절편에도 적용해보니, 필요할 때는 경계선을 강조하고, 필요할 때는 내부 구조까지 자세히 관찰할 수 있음이 확인되었다.
노준석 교수는 “저비용, 간단한 구조, 빠른 반응성이 이 기술의 장점”이라며, “현미경, 휴대용 센서, 의료 내시경 등 장비에서 부품 수와 무게를 크게 줄일 수 있어 작고 가벼운 의료 및 과학 장비 개발에 기여할 것”이라고 전했다. 김예슬 씨는 “습도라는 환경과 빛의 물리 현상을 결합해, 저비용으로 활용할 수 있는 광학 플랫폼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라고 이번 연구의 의의를 밝혔다.
한편, 이번 연구는 포스코홀딩스 N.EX.T Impact 사업,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원하는 한국연구재단 연구과제(RS-2024-00356928), 교육부 대통령과학장학금 등의 재정 지원으로 수행되었다.
DOI: https://doi.org/10.1002/lpor.2025005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