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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공과대학교 기계공학과

학과소식

 

기계.화공 노준석교수, 35억 연봉' 구글 제안 단칼에 거절한 과학자

작성자 김태영 날짜 2022-02-09 13:53:08 조회수 627

[투명망토 등 상상속 물건 연구, `메타물질` 분야 최고 권위자]

[사진] 노준석 교수

'연봉 300만달러(약 35억원), 원하는 근무환경 제공, 필요한 인력 함께 채용.'

모두가 가고 싶어하는 '꿈의 직장' 구글에서 이 같은 제안이 들어왔을 때 거절할 '배포'가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실제 이 제안을 물리치고 포항의 실험실에 남기를 고집한 이가 있다. 노준석 포스텍 기계공학·화학공학과 교수(41)얘기다.

상상만 해도 즐거운 제안을 거절한 노 교수는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연구로 주목받는 젊은 과학자다. 노 교수가 연구하는 분야는 '메타 물질'이다. 메타 물질은 자연계에서는 발견될 수 없는, 전혀 새로운 특성을 가지도록 설계된 물질이다. 그래서 '초재료'라고 한다. 예를 들어 자연에 존재하는 물질들은 빛을 산란시키거나 반사하지만, 메타 물질은 빛을 그대로 뒤로 흘려보낸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양의 굴절률과 정반대 현상이라 '음의 굴절률'이라고도 부른다. 이러한 원리로 만들어 낼 수 있는 대표적인 공상과학적 물건이 '투명 망토'다. 메타 물질로 만든 투명 망토에 물건을 넣으면 빛이 그대로 뒤로 흘러가기 때문에 망토의 존재뿐만 아니라 망토로 감싼 물건도 볼 수 없다.
 

 

진로를 고민하던 노 교수를 메타 물질의 세계로 이끈 것 역시 이 투명 망토 연구를 소개하는 뉴스였다. 노 교수는 "미국 유학 시절에 상상만 하던 투명 망토에 대한 뉴스를 접한 뒤 이 분야라면 재미있게 연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무작정 지도교수를 찾아가 받아 달라고 했다. 무모하게 찾아온 학생을 처음에 거절하던 교수가 내준 몇 개 시험을 통과해 메타 물질 연구를 시작하게 됐고, 지금에까지 오게 됐다"고 말하며 웃었다.

투명 망토를 만들 수 있는 물질은 이미 실험실 수준에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뒀지만, 실제 몸을 두를 수 있는 크기로 키우려면 천문학적인 돈과 시간이 든다. 구글을 비롯한 국내외 글로벌 기업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는 기술은 '메타 렌즈'다. 노 교수는 "광학기술 렌즈 기술이 상용화되면 지금처럼 두꺼운 가상현실(VR) 안경을 콘택트렌즈처럼 가벼운 렌즈로 대체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카메라에서 빛을 모으고 굴절시키기 위해서는 볼록 렌즈가 필요하다. 스마트폰 카메라의 경우 이미지 왜곡을 줄이기 위해 8~9개 굴절 렌즈로 이뤄진 복합 렌즈를 사용한다. 아무리 스마트폰이 얇아져도 카메라 부분이 툭 튀어나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 복합 렌즈를 얇게 만드는 것은 업계의 큰 숙제 중 하나다. 노 교수는 지난해 메타 물질을 활용해 실제로는 볼록하지 않지만 볼록렌즈처럼 빛을 굴절시키는 적외선 초박막 메타 렌즈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모셔 가겠다'는 구글에 제안에 응하지 않은 이유를 묻자 노 교수는 "외국으로 나가서 연구를 지속하기보다는 국내에서 학생들과 함께 이 분야의 결실을 이루고 싶어서"라고 답했다. 서울 출신인 그가 9년째 포항에서 머물고 있는 이유도 이와 같다. 노 교수는 "내가 처음으로 자리 잡은 곳이기도 하고 이 지역에서 연구를 지속해 메타 물질을 대표할 수 있는 국가와 지역이 대한민국, 포항이었으면 좋겠다. 좋은 기술이 서울에서만 연구돼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야 지역에도 인재가 모이는 것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노 교수의 연구 영역은 메타 렌즈에 그치지 않는다. 소리 제어를 통한 스텔스 잠수함, 지진파를 제어하는 내진 구조물, 메타 물질을 활용해 한여름에 자동차나 건물 내부 온도를 낮춰주는 필름 등 메타 물질을 적용한 다양한 분야의 기술을 개발한다. 그의 메타 물질 연구는 2018년 국제 학술지 '네이처'의 표지 논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를 통해 노 교수는 네이처 표지 논문을 장식한 두 번째 인물이 됐다.

주목받는 연구 성과를 내는 젊은 교수에게는 산업계뿐만 아니라 학계의 관심도 이어지고 있다. 올해 학문적 업적과 세계 최초 기술 업적 등 공로를 인정받아 최연소 한국공학한림원 회원으로 선정된 데 이어 포스텍 석좌교수로도 임명됐다. 그는 2019년에도 포스텍 내에서 최연소 무은재 석좌교수로 선정된 바 있다. 무은재 석좌교수는 고 무은재 김호길 포스텍 초대총장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교육과 연구 분야에서 탁월한 성과를 내고 있는 전임 교원을 선발해 임명하는 제도다.

여러 분야에서 최연소 타이틀을 거머쥐고 있지만 노 교수는 학부를 9년 만에 졸업한 늦깎이 졸업생이다. 그사이에 고시 공부도 해 보고, 회사도 다녀보며 '산전수전'을 겪었다. 외국어고를 졸업해 기계공학을 전공하면서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그는 "학부 시절에 방황하다 보니 사실 세상에는 쉬운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다른 걸 잘 못하겠어서' 연구자의 길로 접어들었고, 그러다 보니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포함 해 내게 주어진 모든 것이 감사했다"고 말하며 웃었다. 그는 "연구실에 들어오는 20대 제자들이 연구실 생활을 힘들어 할 때가 많은데, 과거 내 경험이 학생들을 다독이고 위로하고 붙잡아 줄 수 있는 힘이 되는 것 같다"며 "지금은 교수가 된 친구들이 제게 '자신을 잘 잡아줘서 고맙다'는 말을 할 때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노 교수가 연구하는 메타 물질 분야는 연구된 지 약 20년이 지났다. 그는 이 기술이 실제 제조 단계를 거쳐 일상생활에 활용될 수 있는 상용화 단계로 접어들게 하기 위해 전력투하고 있다. 지난해 7월 포스코에서 100억원의 연구비를 지원받아 메타 물질을 가공해 대량 생산을 할 수 있게 하는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노 교수는 "보통 과학이 기술이 되는 데 걸리는 시간이 50년이고, 향후 5년에서 10년이 이 언덕을 넘을 수 있는 중요한 시기"라며 "메타 물질이 기술의 단계로 접어들 수 있도록 계속 연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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