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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공과대학교 기계공학과

학과소식

 

기계 진현규 교수팀, 무질서 속에서 전자의 질서를 찾다

작성자 김태영 날짜 2026-03-09 10:54:39 조회수 93

[비정질결정 구조에서 가로 방향 전자 수송 증폭시키는 새로운 물리 발견]

 

 

물을 흘려보낼 때 파이프 내부가 매끄러울수록 물이 잘 흐르듯, 전자 역시 물질이 깨끗하고 질서정연할수록 더 잘 이동한다는 것이 오랫동안 과학계의 상식이었다. 그런데 최근 국내 연구진이 이 상식을 뒤집는 결과를 내놓았다. 오히려 특정하게 배열된 무질서한 구조가 전자의 흐름을 더 강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POSTECH(포항공과대학교) 기계공학과 진현규 교수, 박상준 박사(일본 물질재료연구기구, NIMS 박사후연구원), 물리학과 이현우 교수, 이호준 연구원 연구팀이 서로 다른 구조가 섞인 자성 물질에서 전자 흐름이 예상보다 훨씬 강해지는 현상을 발견했다. 이 연구는 미국물리학회가 발행하는 물리학 분야 최상위 학술지 '피지컬 리뷰 레터스(Physical Review Letters)'에 최근 실렸다.

연구진이 주목한 현상은 '가로 방향 전자 수송(transverse transport)'이다. 일반적으로 전류나 열은 가해준 방향을 따라 흐르지만, 자성을 띠는 물질이나 위상학적으로 특이한 성질을 가진 물질에서는 흐름이 옆 방향으로 휘어지기도 한다. 이는 북반구에서 북상하는 태풍이 지구 자전의 영향으로 인해 동쪽으로 휘어지는 것과 비슷하다. 이러한 특성은 자기 센서, 차세대 전자소자, 열을 전기로 바꾸는 열전 발전 기술 등에 활용될 수 있어 활발히 연구되어 왔다.

기존에는 이 효과를 크게 만들려면 전자가 강하게 휘어지는 특이한 양자 물질이나, 결함이 거의 없는 고품질 단결정 소재가 필요하다고 여겨졌다. 물질 내부가 최대한 정돈된 상태여야 한다는 것이 통설이었다. 하지만 연구팀은 다른 접근 방식을 제안했다. 두 종류의 자성 물질을 화학적으로 완전히 합치는 대신, 각 물질의 고유한 성질을 유지한 채 물리적으로 섞은 것이다. 그 결과, 비정질(무정형)과 결정 구조가 뒤섞인 복합 물질에서 전자가 옆 방향으로 흐르는 효과가 각 물질 단독일 때보다 훨씬 강해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는 실험과 이론 계산 모두에서 확인됐다.

이러한 현상의 비밀은 전자 이동 경로에 있다. 복합 물질 내부에서 전자는 직선으로 나아가지 않고, 서로 다른 물질 영역을 따라 구불구불한 경로를 그리며 이동한다. 마치 좁은 골목길과 넓은 대로를 번갈아 지날 때 이동 방향이 수시로 바뀌는 것과 비슷하다. 이 과정에서 전자의 흐름이 옆 방향으로 더 크게 휘어지면서 가로 방향 전자 수송이 증폭되는 것이다.

이는 기존 이론의 중요한 가정을 깨는 결과이기도 하다. 그동안 복합 물질의 성질은 구성 물질들의 평균값정도로 나타난다고 여겨졌는데, 물질이 섞이는 방식 자체가 새로운 물리적 효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또한, 연구팀은 이러한 현상이 특정 희귀 물질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비교적 흔한 자성 물질 조합에서도 가능하다는 점도 입증했다. 실제로 철 기반 자성 물질을 이용한 실험에서 일부 고품질 양자 단결정 물질에 버금가는 성능이 나타났다. 이는 값비싼 특수 소재가 아니라도 높은 성능의 전자 수송 물질을 설계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번 논문의 교신저자인 진현규 교수는 "희귀 물질에 의존하지 않고도 높은 성능을 내는 저비용 소재 설계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라며 "스핀트로닉스 및 열전 에너지 변환 분야 응용이 기대된다"라고 전했다. 또한, 공동교신저자인 이현우 교수는 무질서를 피해야 할 결함이 아니라 오히려 물질 설계에 활용할 수 있는 요소로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 연구라며 연구의 의의를 전했다.

본 연구는 삼성미래기술육성사업, 한국연구재단,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연구비 지원을 받아 수행됐으며, 프로테리얼 코리아에서 제공한 시료를 활용해 수행됐다. 한편, 해당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한 논문은 제30회 삼성휴먼테크논문대상 재료과학 및 공학 부문 장려상을 수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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